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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회 시스템 속에서 외면당한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 묵직한 드라마다. 열아홉 소희가 현장실습을 나간 콜센터에서 겪는 노동 착취와 심리적 붕괴, 그리고 이후 한 형사의 시선으로 풀어지는 사건의 추적과 사회적 고발이 담겨 있다. 배우 김시은의 사실적인 연기와 배두나의 절제된 시선이 어우러지며, 관객에게 씁쓸한 현실과 응시해야 할 진실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1. 소희의 현실, '열아홉'에게 너무 가혹했던 세상
‘다음 소희’는 평범한 고등학생 소희(김시은)가 콜센터 현장실습을 나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일터를 경험과 배움의 공간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소희가 마주하는 현실은 성과 압박, 감정노동, 인간 이하의 취급이 당연시되는 곳이다. 소희는 처음엔 웃으며 일에 적응하려 하지만, 점차 그녀는 성과 중심의 냉혹한 시스템에 깎여나간다. 상담 건수와 실적에만 매달리는 관리자, 감정은 무시한 채 ‘고객 응대’를 강요하는 구조, 학교와 기업의 무책임한 태도는 소희를 외로운 곳으로 몰아간다. 이 영화의 무게는 바로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데 있다. 감독은 과장을 피하고, 최대한 있는 그대로 소희의 일상을 따라간다. 그 덕에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보다 ‘지금도 이렇지 않을까?’라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카메라는 소희의 표정, 혼잣말, 침묵을 오래 비춘다. 그녀는 점점 말이 줄고, 표정이 굳으며, 마음이 무너지는 과정을 관객이 고스란히 지켜보게 된다. 김시은은 신인답지 않은 섬세한 표현력으로 이 감정선을 현실감 있게 전달한다. ‘다음 소희’는 열아홉에게 꿈과 성장을 말하기 전에, 최소한 인간적인 대우를 먼저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2. 형사의 시선, 진실을 마주하려는 용기
영화는 중반부터 형사 유진(배두나)의 시선으로 전환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시점의 전환이 아닌, 감정의 방향이 바뀌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소희의 사건을 알게 된 유진은 점차 이 사건의 배후에 있는 구조와 사람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유진 역시 거대한 벽을 마주한다. 학교, 기업, 기관, 행정 등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서로 책임을 떠넘긴다. 형사인 그녀조차 벽에 부딪히는 현실은, 관객으로 하여금 이 사회 시스템의 냉혹함을 실감하게 만든다. 배두나는 절제된 연기로 분노를 표현한다. 그녀는 크게 외치지 않지만, 무너진 감정을 참으며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을 묵직하게 그려낸다. 그녀의 눈빛과 침묵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다음 소희’가 특별한 이유는, 이 영화가 단순한 피해자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의 변화를 담으며, 이 고통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들이 어떻게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를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진다. 소희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고통이 아니라, 지금도 어디선가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고, 유진의 시선은 관객이 가져야 할 ‘감시자’이자 ‘행동가’의 시선이다.
3. 시스템을 고발하다, 불편함 속 진짜 희망
‘다음 소희’는 끝까지 드라마틱한 전개나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강력한 충격을 준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이야기가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 교육과 기업 사이의 무책임한 연결, 성과 중심의 노동 환경, 심지어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등한시한 사회의 무관심까지, 영화는 하나하나 그 실태를 조명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지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고 관객의 감정을 통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흐름을 만들어낸다. 영화는 끝없이 되묻는다. “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가?”, “왜 아무도 듣지 않았는가?”, “왜 또 다른 소희가 나와야 했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남아 관객의 가슴을 짓누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소희’는 단지 비극적인 고발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작은 관심, 작지만 진심 어린 시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담는다. 우리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라, 다음 소희가 나오지 않도록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다음 소희’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추는 거울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구조적 질문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묵직하지만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 그리고 변화에 대한 책임은 이제 관객의 몫이다. 당신은 ‘다음 소희’를 보고 난 후, 분명히 무언가를 느끼고,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