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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봉한 <설계자>는 한 치의 감정도 허용하지 않는 ‘살인 청부 설계자’의 시선을 통해 대한민국 암흑세계의 이면과 그 안에서 점차 무너지는 인간성을 정밀하게 그려낸 누아르 스릴러다. 류승완 감독이 제작하고, 배우 강동원이 주연을 맡아 인물의 냉정한 외면과 흔들리는 내면을 절제된 연기로 표현해 호평받았다. 감정 없는 계획자였던 주인공이 뜻밖의 사건에 휘말리며 ‘죽음의 설계자’에서 ‘죄책감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과정은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영화는 '악'이라는 감정 없는 시스템 속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설계자 줄거리
주인공 '영일'(강동원 분)은 암살을 직접 실행하지는 않지만, 청부살인 전체를 설계하는 인물이다. 그는 타깃의 동선, 심리, 약점, CCTV 사각지대까지 철저히 분석해 치밀하게 ‘사건’을 만든다. 그는 감정도, 주저함도 없는 인물로, 의뢰가 들어오면 바로 시뮬레이션을 짜고 ‘실행팀’에게 넘긴다. 영일은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논리적 업무'라고 생각한다. 죄의식도, 연민도 없다.
하지만 어느 날, 새로운 의뢰가 들어온다. 평범한 대학생 ‘지우’가 타깃이다. 의뢰 배경은 모호하고, 영일은 이례적으로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그는 지우를 멀리서 관찰하면서 그녀가 누구의 생명도 위협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개입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계획은 어긋난다. 영일은 살인을 중단하자고 하지만, 그의 조직은 이미 ‘계약 위반’을 이유로 그를 제거하려고 한다. 조직 내에서 자신도 타깃이 된 영일은 쫓기면서도 지우를 보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과거 자신이 설계했던 또 다른 ‘의뢰’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며, 결국 스스로가 저지른 죄를 직면하게 된다.
영화 속 주제와 해석
<설계자>는 '직업적인 살인'이라는 소재를 통해 도덕, 죄책감, 인간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영일은 처음엔 감정이 제거된 '기계 같은 인간'으로 등장하지만, 지우라는 예외적인 인물을 만나면서 자신이 만든 세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1. 감정 없는 시스템의 위선
영일이 속한 조직은 살인을 ‘합리적인 서비스’로 포장한다. 고객은 의뢰인이고, 살인은 상품이며, 영일은 기획자일 뿐이다. 이처럼 죽음을 비즈니스처럼 다루는 설정은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 구조를 풍자한다. 영화는 감정이 배제된 체계 안에서 벌어지는 극단적 행위가 결국 인간 본연의 윤리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묘사한다.
2. 죄의식과 인간성
지우를 타깃으로 삼은 후, 영일은 처음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이 한 일들의 의미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이는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로 이어진다. 영화는 살인을 멈춘 순간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3. 설계자는 설계할 수 없는 것
영일은 모든 상황을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지만, ‘감정’과 ‘사람의 선택’만큼은 계획할 수 없다. 지우의 존재는 그가 처음으로 예측하지 못한 변수이며, 결국 이 변수는 영일이 ‘인간’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 즉, 영화는 설계할 수 없는 영역에 진짜 인간성이 존재함을 역설한다.
설계자 결말
후반부, 영일은 자신을 제거하려는 조직을 피해 도망치면서 지우와 함께 도시를 탈출하려 한다. 하지만 이미 그의 동선은 조직에 노출되어 있고, 결국 지우는 조직의 다른 킬러에 의해 공격당한다. 영일은 지우를 구하며 조직과 정면으로 대치하게 되고, 조직의 실체 — 정치인, 재벌, 고위층이 얽힌 비밀청부 살인의 전모가 드러난다.
마지막 총격전 이후, 영일은 중상을 입은 채로 지우를 안전하게 보내고 홀로 남는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설계했던 모든 살인 리스트를 공개하고, 언론에 내부 고발 자료를 넘긴다. 그 후, 영일은 경찰에 자수하며 영화는 그가 차가운 유리벽 뒤에서 조용히 “이제야, 인간이 된 것 같다”는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결론: 감정 없는 설계자, 인간이 되다
<설계자>는 범죄 영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실상은 인간성과 죄의식, 구원에 대한 깊은 드라마다. 냉정함으로만 무장한 주인공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세상도, 자신도 달라지는 과정을 통해 영화는 인간 본연의 윤리에 대해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살인을 설계하던 자가 결국 자기 죄를 설계에서 제외시켰을 때, 비로소 ‘사람’으로 거듭난다. <설계자>는 인간이란 무엇인지, 죄를 직면하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는 한국형 느와르의 진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