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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공개된 <소풍>은 아버지를 여읜 한 남자가 유골함을 들고 아버지의 마지막 소풍을 떠나는 하루를 통해, 죽음과 이별, 기억과 치유에 대해 잔잔하고 깊이 있게 다룬 감성 드라마다. 이 영화는 큰 사건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서서히 파고드는 섬세한 연출과 서정적인 시선이 돋보이며, ‘죽음’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오히려 삶의 본질을 되묻는 여운을 남긴다. 한 남자의 조용한 여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며, ‘소풍’이라는 은유적 장치를 통해 일상 속에서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소풍 줄거리
주인공 ‘기석’(배성우 분)은 며칠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오랜 병치레 끝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장례는 조용히 치러졌고, 이제 기석은 남은 유골함을 들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한다. 그의 목적지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갔던 강가 근처의 작은 언덕. 그곳은 아버지가 생전에 “죽기 전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라고 했던 장소다. 기석은 ‘소풍 간다’는 말을 남기고, 작은 가방 하나와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차를 몰아 길을 나선다.
하루 동안의 여정을 따라 영화는 조용히 기석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라디오 속 사연, 도착지로 가는 길목의 풍경들 — 모든 것이 아버지와의 기억을 되살린다. 중간중간 기석은 옛 동네를 들르고, 오래전 단골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를 사 먹고, 예전 사진관에서 필름 사진을 인화한다. 이 모든 행위는 단순한 ‘추억’이 아닌, 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을 되짚는 ‘작별 인사’다.
도착한 언덕 위에서 그는 혼자 돗자리를 펴고, 아버지의 유골함을 옆에 두고 도시락을 꺼낸다. 바람이 부는 고요한 산책로에서 기석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잘 가요, 아버지. 많이 그립고, 많이 고마웠어요.” 그 순간, 멀리서 웃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난다.
영화 속 주제와 해석
<소풍>은 극적인 서사 없이도 묵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다. ‘소풍’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진 유년의 따뜻한 기억과,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연결하는 방식은 매우 상징적이다.
1. 죽음을 말하지만, 삶을 이야기하다
영화는 죽은 이를 추모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남겨진 자가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이는가’에 주목한다. 기석의 여정은 장례 이후의 이야기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고인을 기리는 것뿐 아니라, 자신의 상처를 다독이는 방법을 본다.
2. 일상과 추억의 감정 회복
기석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평범한 기억들을 따라간다. 그 추억은 특별하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유산임을 영화는 말한다. 어느 특별한 대사보다, 옛 분식집에서 나눴던 떡볶이의 맛이,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이별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한다.
3. ‘소풍’이라는 은유
소풍은 유년의 즐거운 경험이지만, 동시에 삶의 순환을 상징하는 장치로 쓰인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들고 떠나는 소풍은 ‘영혼의 마지막 여행’이자, 기석이 삶을 다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다. 감독은 이 잔잔한 설정을 통해 죽음을 일상 안에 끌어들이고, 두려움이 아닌 기억의 일부로서 보여준다.
소풍 결말
언덕 위에서의 시간을 마친 기석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유골을 강가 근처, 오래된 나무 아래에 뿌린다. 그는 무언의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오랜 침묵 끝에 잔잔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돌아오는 길, 기석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낸다. “아버지와 마지막 소풍을 다녀왔어요. 정말 좋은 날이었어요.” DJ는 따뜻한 목소리로 그 사연을 읽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마지막 장면, 기석은 길가에 잠시 멈춰 옆자리를 바라본다. 비어 있는 듯하지만, 마치 누군가 함께 있는 듯한 온기가 느껴진다. 영화는 그 순간, 차창 너머 흐르는 햇살을 비추며 끝난다. 떠난 이는 갔지만, 남겨진 이의 삶은 계속되고, 그 안에 사랑이 남았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다.
결론: 슬픔이 머무는 곳에 사랑이 있다
<소풍>은 죽음을 두려움으로 보지 않고, 사랑의 마지막 표현으로 그려낸 영화다. 가장 평범한 공간과 풍경 속에서, 가장 깊은 감정을 끌어올리는 이 작품은 소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진심을 조용히 마주하고 싶은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가 된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게 된다. 하지만 그 이별이 끝이 아니라, 기억과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소풍>은 말해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조용히 묻는다 — “당신은 마지막 인사를, 어떤 모습으로 남기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