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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리뷰 (조선을 뒤흔든 저항의 이름)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7. 11.

영화 ‘박열’ 리뷰
영화 ‘박열’ 리뷰

 

 

2017년 개봉한 영화 **‘박열’**은 실존 인물 조선의 아나키스트이자 시인 박열의 삶을 바탕으로 한 역사 드라마입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을 멸시하며 조작된 사건으로 조선인을 희생양 삼으려던 일본 제국주의 앞에서
“나는 조선인이고, 폭탄을 던지러 왔다”라고 외친 인물, 박열.
그의 실화를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감독 이준익의 연출과, 배우 이제훈최희서의 명연기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삶을 기존의 영웅주의 방식이 아닌 아이러니와 유머, 철학으로 접근한 독창적인 역사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시도로 평가됩니다.


영화 ‘박열’ 리뷰, 조작된 ‘조선인 폭탄 테러 사건’, 거짓에 맞선 진짜 저항

영화의 배경은 1923년 간토 대지진 직후의 일본입니다.
지진 이후 불안정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가짜 뉴스와 선동으로 조선인을 무차별하게 학살합니다.
이를 무마하고자 일본 내각은 조선인 아나키스트 박열을 희생양 삼아 ‘대역사건’을 조작하려 합니다.

그러나 일본 검찰이 준비한 ‘연극’은 뜻밖의 전개를 맞습니다.
박열은 얌전히 죄를 인정하기는커녕,
스스로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 한 계획이 있었다며 공개 선언을 합니다.
이전까지 일본 정부가 통제해 왔던 프레임이 박열의 발언으로 완전히 흔들리고,
그는 오히려 법정에서 일제의 모순과 폭력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정치투사로 거듭납니다.

이 대목은 관객에게 통쾌함을 안기며,
‘역사는 권력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자의 언어로 쓰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제훈과 최희서, 목소리로 싸우는 두 청춘

이제훈은 젊은 시절의 박열을 맡아
기존의 영웅적 독립운동가 이미지와는 다른,
위트와 철학, 그리고 냉철한 분석력을 가진 저항가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그의 박열은 무겁고 진지한 인물이 아니라,
말과 논리, 상징을 무기로 체제에 균열을 내는 지적인 반항아로 그려져 관객에게 신선함을 줍니다.

특히 일본 법정에서 통역을 거치며 일본을 향해 직접 반박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연기가 분노와 냉소, 지적 도발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박열이라는 인물의 매력을 강렬하게 전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역은 최희서가 연기한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가네코는 일본인임에도 박열의 동지이자 연인으로,
함께 아나키즘을 신봉하며, 일본의 권위주의에 맞서 싸우는 인물입니다.

최희서는 이 캐릭터를 통해 한 여성 혁명가의 뜨거운 열정과 슬픔을 강단 있게 표현하며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각종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녀의 대사 하나하나엔 철학과 분노,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향한 외침이 담겨 있어
박열과 함께 영화의 양 축을 이루는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정통 역사 영화’의 틀을 깨는 이준익 감독의 연출

‘사도’, ‘동주’, ‘왕의 남자’ 등 역사극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뤄온 이준익 감독
이번에도 역시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박열의 이야기를 젊고 도발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극은 무겁고 장중한 방식이 아니라,
리듬감 있는 편집과 유머, 역설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꼬집고 풍자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 검찰이 조작한 ‘극본’과 박열의 ‘연설’이
서로 다른 극을 펼치는 연극 무대처럼 구성되며,
관객은 이 역사적 법정극을 마치 블랙코미디처럼 보게 됩니다.

하지만 결코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가볍지 않습니다.
**‘정의는 권력자의 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침묵보다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주제는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외침이기에 더욱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또한 실제 인물들의 철학과 역사적 기록을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된 인물 표현은
박열과 가네코가 단지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결론: 가장 뜨거운 저항은 말로부터 시작된다

‘박열’은 전통적인 독립운동 서사와는 다른 접근을 택합니다.
폭탄도, 총도 아닌 말과 신념으로 싸운 한 청춘의 이야기,
그리고 그 옆에 서서 끝까지 함께 외쳤던 또 한 명의 청춘.

이 영화는 말하는 자의 용기, 침묵하지 않는 자의 역사적 책임을 되새기게 하며
관객에게 단순한 감동을 넘어 자기반성과 질문을 남깁니다.

특히, 지금도 여전히 반복되는 혐오와 왜곡의 시대에
‘박열’은 말합니다.
진실은 꾸며질 수 있지만, 결코 가려질 수는 없다고.

이런 영화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기억하고 말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저항의 시작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