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개봉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스릴러 영화입니다.
감독 원신연이 메가폰을 잡았고, 설경구, 김남길, 설현, 오달수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출연하여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마라는 독특한 설정을 바탕으로 기억과 진실, 죄의식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입니다.
장르적 긴장감에 문학적 깊이를 더해, 단순한 추리 스릴러를 넘어 인간의 본성과 윤리적 딜레마를 탐구한 한국 스릴러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사라지는 기억 속, 잊히지 않는 죄
영화의 주인공 **‘병수’(설경구)**는 과거 연쇄살인을 저질렀지만 지금은 양계장을 운영하며 조용히 살아가는 노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의 병이 찾아옵니다. 알츠하이머.
기억이 점점 사라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과거 살인 행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살인은 정당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형사 ‘태주’(김남길)**에게서
자신과 같은 살인자의 냄새를 느끼게 되고,
그를 새로운 위협이자 자신이 멈춰야 할 존재로 인식하게 됩니다.
문제는 병수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것.
그는 실제인지 환상인지 구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혼란에 빠지며,
관객은 병수의 시선을 따라가며 믿을 수 없는 기억과 흔들리는 진실 사이에서 스릴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한 연쇄살인 영화가 아니라,
자기 기억을 의심하게 된 살인자의 내면을 따라가는 심리 스릴러이며,
그 기억이 왜곡될수록, 진짜 죄는 무엇이고 벌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되묻습니다.
설경구의 인생 연기, 기억과 감정 사이의 줄타기
이 영화가 단단히 중심을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배우 설경구의 놀라운 연기력입니다.
병수라는 인물은 살인을 저질렀지만 후회하지 않고,
정의감이 왜곡된 채 자신의 방식대로 살인을 ‘합리화’했던 과거를 가진 인물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잊어가며
자신의 과거조차 믿을 수 없는 상태로 추락합니다.
설경구는 이런 복잡하고 이중적인 캐릭터를
절제된 감정과 생생한 눈빛, 그리고 리듬감 있는 말투와 신체 연기로 압도적으로 소화해 냅니다.
특히 살인을 회상하는 장면과 치매 증세가 악화되며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장면들에서는
한 인간이 스스로 붕괴되는 과정을 너무나도 리얼하게 표현해
관객에게 연민과 불쾌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이중적 정서를 전달합니다.
그의 연기는 단순한 '연쇄살인범'의 이미지를 넘어,
무너지는 인간, 기억을 쫓는 존재, 정의와 윤리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아의 총체를 형상화합니다.
스릴러의 외피 속 도덕적 질문, 그리고 반전의 미학
감독 원신연은 영화 전체를 병수의 시점에 고정시키는 연출 방식으로
관객조차도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왜곡인지 판단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이러한 방식은 관객을 병수의 심리 상태에 깊이 몰입하게 하며,
진실의 조각을 병수와 함께 맞춰가는 형식으로 스릴러 장르의 매력을 강화합니다.
한편, 김남길이 연기한 ‘태주’는 선역인지 악역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는 인물로,
시종일관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병수와 심리전을 벌입니다.
특히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전개되는 기억의 반전과 서사의 뒤집힘은
관객에게 강한 충격을 주면서도,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단순히 스릴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억과 죄의식, 인간성과 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한 편의 도덕적 미스터리로 확장됩니다.
더불어 극의 마지막에서 등장하는 **병수의 딸 ‘은희’(설현)**의 존재 역시
병수의 기억 왜곡과 현실 사이에서 관객이 다시 한번 혼란을 겪게 만드는 강력한 서사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결론: 기억은 흐려지지만, 죄는 남는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장르 영화의 외피 속에
철학적 질문과 인간적 고뇌를 깊이 새겨 넣은 수작입니다.
기억은 왜곡되고, 현실은 모호하며, 진실은 언제나 늦게 도달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모순과 혼란을 압도적인 연출과 연기로 정면 돌파하며
단순한 ‘살인자 이야기’를 심오한 인간 이야기로 끌어올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묻는 본질은 분명합니다.
기억이 사라진다고, 죄도 사라지는가?
그 질문은 병수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망각할수록, 어떤 죄는 계속 반복된다는 경고일지도 모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그 경고를,
기억 속에서 조용히 스며들게 만드는 강렬하고도 슬픈 스릴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