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개봉한 **‘안시성’**은 한국 고대사 속 가장 극적인 전투로 꼽히는 고구려-당나라 전쟁, 그중에서도 645년 ‘안시성 전투’를 배경으로 한 대작 전쟁 영화입니다. 실제 역사에서 고구려의 소수 병력이 당나라 대군을 88일간 막아낸 이야기를 바탕으로, 민족적 자긍심, 전술, 인간 군상을 깊이 있게 다룹니다.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과 함께 유사 이래 가장 전략적인 성 전투 묘사라는 평가도 받았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안시성’의 줄거리 요약, 인물과 연기 분석, 전쟁 묘사와 연출력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영화 ‘안시성’ , 줄거리: 역사의 순간을 재현하다
영화는 645년, 당태종 이세민이 고구려 원정을 시작하며 벌어진 전투를 배경으로 합니다. 당시 고구려는 연개소문 사후 정치적으로 흔들리는 시기였지만, **성주 양만춘(조인성)**이 지키는 안시성은 당군의 공격에 굳건히 맞섭니다. 당군은 20만 대군, 고구려는 고작 5천 병력—불가능해 보이는 싸움 속에서 양만춘과 성민들은 전략과 희생으로 성을 방어합니다.
줄거리의 전개는 단순한 전쟁 서사에 머물지 않고, 각 인물의 심리와 선택, 그리고 공동체의 연대를 밀도 있게 풀어냅니다. 당나라 측 인물인 이세민(박성웅)의 전략과 오만함, 그에 맞서는 고구려의 불굴의 의지와 성민들의 일상 속 비장함이 교차하며 영화적 긴장감을 고조시킵니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인 **‘토산 전투’**는 역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해석되었으며, 자원 부족 속에서 흙으로 산을 쌓아 반격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힙니다. 현실감과 상징성 모두를 잡은 장면으로,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서사적·미학적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인물과 연기: 영웅을 넘어 사람을 말하다
주인공 양만춘은 단순한 영웅상이 아닙니다. 그는 책임감과 고뇌, 그리고 인간적인 연민을 지닌 리더로 묘사됩니다. 조인성은 기존의 부드러운 이미지에서 벗어나, 강단 있고 깊이 있는 리더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소화해 내며 관객에게 무게감 있는 감정선을 전달합니다.
그 외에도 남주혁(사물 역), 배성우(추수지 역), 엄태구(파소 역) 등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각각 전술, 충성심, 원한과 갈등 등 전쟁 속 다양한 감정을 그려냅니다. 특히 배성우는 전투 경험과 전략적 사고를 겸비한 군사 역할로 극의 흐름을 안정감 있게 끌고 가며, 영화 전반에 걸쳐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 캐릭터인 시미(정은채)와 백화(설현)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주변 인물이 아닌, 고구려 민초의 현실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상징적인 인물로 기능합니다. 특히 설현은 기대 이상의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여성 전사 백화의 투혼과 감정을 전달하며, 젊은 관객층의 감정 몰입을 이끕니다.
이처럼 ‘안시성’은 영웅만이 아닌 모두가 주인공인 전쟁 영화입니다. 이름 없는 병사, 농민, 여성까지 모두가 나라를 지키는 장면은 단일 인물이 아닌 공동체 중심의 영웅 서사를 보여주며 큰 울림을 줍니다.
전투 묘사와 연출: 한국형 전쟁 영화의 진일보
‘안시성’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전투 연출의 완성도입니다. 이 영화는 CG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현장감 있는 세트와 스턴트, 그리고 치밀한 전술 묘사를 바탕으로 생생한 전투 장면을 구현합니다. 특히 활과 투석기, 공성무기 등 고대 전쟁 도구들이 현실감 있게 표현되며, 전략 전투의 묘미를 전달합니다.
연출을 맡은 김광식 감독은 대규모 인원과 전술적 움직임을 다층적으로 연출하며, 전투 장면을 단순히 ‘화려한 액션’이 아닌 전략적 시선으로 구성합니다. 관객은 양만춘의 시선뿐 아니라 병사들의 시선에서도 전투를 체험하게 되며, 몰입감과 감정 이입을 동시에 유도합니다.
음향과 미장센도 인상적입니다. 전투 장면에서의 타격음, 질주음, 함성 소리는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며, 성벽 위 붉은 깃발, 어두운 하늘, 먼지 낀 전장의 색감은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전장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완성합니다.
마지막 전투에서는 당나라군의 기계적 전진과 고구려 병사들의 자발적 희생이 대조되며, 개인의 전략과 집단의 신념이 어떻게 결합되어 위대한 방어전으로 이어졌는지를 실감 나게 보여줍니다.
결론: 잊혀진 역사를 되살린 한국 전쟁 영화의 자부심
‘안시성’은 단순한 역사 재현이나 전투 영화에 그치지 않고, 잊혔던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되살린 작품입니다.
소수의 병력으로 거대한 제국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공동체가 함께 지켜낸 승리의 의미는 지금 시대에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한국형 전쟁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 감정, 전술, 인간성을 고루 갖춘 ‘안시성’은 민족적 자긍심을 일깨우는 동시에, 상업성과 예술성 모두를 잡은 전쟁 대작으로 평가받을 만합니다. 아직 관람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는 한국사와 영화의 만남이 이룬 가장 성공적인 결과 중 하나로 기억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