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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리뷰 (그해 우리는)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6. 22.

 

 

영화 ‘1987’ 리뷰

 

 

 

**‘1987’**은 2017년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정치 드라마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점으로 일어난 6월 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특정 인물의 전기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 하나하나가 어떻게 역사의 주체가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다중 시점 서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시각효과 없이도, 오직 진실과 정의에 대한 목소리만으로 강한 울림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영화 ‘1987’, 그해 1월, 한 청년의 죽음이 역사를 바꿨다

영화는 1987년 1월 14일, 서울대생 박종철의 사망 사건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경찰은 이를 단순 쇼크사로 발표하지만, 검사의 부검 요구와 기자들의 의심으로 인해 고문치사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 국민적 분노가 확산됩니다. 이후 영화는 박종철의 죽음을 은폐하려는 권력자들과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 간의 긴박한 대결을 촘촘히 그려냅니다.

이야기의 전개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권력의 폭력성과 언론의 역할, 시민의 각성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영화가 단순히 피해자 중심의 시선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검사, 교도관, 기자, 학생, 신부 등 다양한 계층의 인물을 통해 이 사건이 어떻게 전국적 항쟁으로 확산됐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중앙정보부, 검찰, 언론, 교도소, 성당, 대학가 등 여러 공간이 무대가 되며, 이는 당시 대한민국 전체가 하나의 ‘진실 게임’ 안에 있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부검을 지시한 검사 최환(하정우), 언론의 양심을 지킨 기자 윤상삼(이희준), 정의로운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거리로 나서는 대학생 연희(김태리) 등 모든 캐릭터가 ‘역사에 기여한 이름 없는 영웅들’로 재조명됩니다.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 서사의 설득력을 더하다

‘1987’의 또 하나의 힘은 당대를 대표하는 배우들의 앙상블입니다. 하정우, 김윤석, 유해진, 김태리, 박희순, 이희준, 설경구, 강동원까지 등장만으로도 무게감을 주는 배우들이 극을 단단히 지탱합니다.

김윤석은 박종철을 고문한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 ‘박처장’ 역으로 분해, 냉혈한 권력자의 표본을 강렬하게 표현합니다. 그가 보여주는 무감정한 명령과 냉소적인 대사는 체제의 잔혹함과 무서움을 고스란히 드러냅니다.

반면 유해진은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물 중 하나인 교도관 한병용을 맡아, 작지만 결정적인 진실 전달자로 활약합니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는 ‘작은 용기’를 통해, 관객에게 진짜 용기는 거대한 게 아니라 작고 조용한 선택에서 나온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김태리는 시대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던 인물에서, 현실을 직면하고 거리로 나서는 청춘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연기하며, 젊은 세대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를 연결하는 고리 역할을 합니다.

또한 짧게 등장하는 강동원의 전대협 리더 역할은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시각적으로 정리하며, ‘우리 모두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상징적 장면을 만들어냅니다.


정치 영화인가, 인간 드라마인가?

‘1987’은 정치적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영화적인 감정과 인간적인 선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특정 이념을 강요하지 않고, 단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의 결단과 두려움, 용기를 보여줌으로써 감정의 보편성을 획득합니다.

중요한 점은, 영화가 단지 분노를 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슬픔과 공감, 책임의식을 차분하게 전달한다는 점입니다. 박종철의 아버지 역으로 등장하는 배우 김종수의 대사는 영화 전체를 정리하는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책상에 앉아있던 사람이 때려서 죽었다는데, 그걸 아무도 몰랐다니요.”

그 한 문장은 한 개인의 죽음이 한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게 만드는지, 진실을 은폐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대립이 얼마나 시대를 정의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 후반, 국민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울려 퍼지는 ‘그날이 오면’은 단순한 엔딩 음악이 아닌, 관객 스스로가 역사의 목격자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감정적 정점입니다.


결론: 진실을 밝힌 자들의 연대, 그 이름 없는 영웅들

‘1987’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영화적으로 재현한 작품이자, 무거운 주제를 감정적으로 공감 가능하게 만든 보기 드문 정치 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데 머무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얼마나 진실한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를 관객 스스로에게 묻게 만듭니다.

영웅은 거창한 존재가 아니라, 작은 용기와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평범한 사람들임을 보여준 영화, 그게 바로 ‘1987’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남는 여운은, 바로 우리가 여전히 그 역사의 연장선 위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