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영화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감독 조정래는 무려 14년간 기획과 제작을 준비하며, 실존 피해자들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했습니다. 상업성이 낮다는 이유로 투자가 철회되기도 했지만, 수많은 시민 후원과 국민 펀딩으로 마침내 극장에 걸리게 되었고, 그 해 350만 명이 넘는 관객이 자발적으로 관람하며 대한민국 영화계에 하나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귀향’은 단순히 영화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것은 망각과 외면의 벽을 뚫고 세상에 외친 진실의 목소리이며,
우리가 마주해야 할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담담히 드러낸 기억의 기록입니다.
영화 '귀향' 리뷰, 14살 소녀, 정민의 끌려간 이야기…
이 영화는 1943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소녀 정민(강하나)이 일본군에 끌려가며 시작됩니다. 그녀는 '근로정신대'라는 명목으로, 하지만 실상은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기 위해 중국 위안소로 이송됩니다. 정민과 함께 간 또 다른 소녀 '영희'(서미지)는 그곳에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냅니다.
감독은 극도의 자극적 묘사를 자제하면서도, 눈을 피할 수 없는 고통의 현실을 집요하게 재현합니다.
소년병들의 폭력, 일본군의 비인간적인 행위, 소녀들 간의 연대와 절망. 이 모든 장면은 철저히 피해자의 시선에서 구성되어 있으며, 관객이 그들의 감정에 이입할 수밖에 없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는, 아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조차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는 몸짓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생명이 아닌 물건처럼 취급받던 소녀들이, 마지막까지 서로를 지켜주려는 순간은 모든 감정을 넘어서 절규와 침묵의 경계를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와 ‘실제 증언’이 빚은 고통의 기록
‘귀향’의 배우들은 대부분 무명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상업영화에서 보기 힘든 선택이지만, 바로 그 점이 영화의 진정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정민 역의 강하나는 절제된 감정 표현을 통해 어린 소녀의 공포와 슬픔, 그리고 점차 마비되어 가는 감정을 고스란히 전합니다.
서미지가 연기한 영희는 내면의 분노와 체념, 그리고 타인을 감싸는 따뜻함까지 담아내며, 그 시대 수많은 소녀들을 대변합니다. 두 배우의 눈빛, 숨소리, 그리고 대사 하나하나에는 감정의 무게가 실려 있으며, 감상자 역시 관객이 아니라 증언을 듣는 입장이 되도록 이끕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실존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의 육성이 삽입됩니다.
이는 픽션이었던 영화가 단숨에 역사적 다큐멘터리로 변하는 순간이며,
관객들은 극장을 나설 때 더 이상 ‘영화’를 본 것이 아닌,
역사 앞에서 증언을 들은 증인이 되어버립니다.
기억하라, 잊지 말라, 그리고 말하라
‘귀향’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에게 말하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피해자들의 고통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왜 그 고통이 오랫동안 외면당했고,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도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위안부 문제는,
단지 정치적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권과 존엄에 대한 문제임을 영화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또한 ‘귀향’은 여성의 몸을 전쟁의 도구로 삼았던 제국주의의 폭력을 고발하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도 전 세계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전시 성폭력의 실태에 대한 경각심을 줍니다.
이 영화는 단지 한국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문제라는 것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외칩니다.
‘귀향’은 무언가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결되지 않은 상태 그대로, 우리에게 넘깁니다.
"이제 당신이 이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고.
결론: 증언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가 말할 차례
‘귀향’은 눈물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절로 눈물이 흐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죄책감과 책임감, 그리고 기억해야 한다는 사명에서 비롯된 감정입니다.
2024년, 위안부 생존자들은 이제 단 몇 분만이 남아 계십니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진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그 진실을 담은 작은 목소리이며,
그 목소리가 꺼지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증언해야 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