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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 리뷰 (재난영화, 인간심리, 구조시스템)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7. 13.

영화 '터널' 리뷰
영화 '터널' 리뷰

 

 

2016년 개봉한 영화 ‘터널’은 일상 속에서 갑자기 닥친 터널 붕괴 사고를 통해, 개인의 생존과 사회 시스템의 작동 방식,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정면으로 다루는 재난 드라마입니다.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등 연기력으로 입증된 배우들의 호연과 김성훈 감독의 현실적이면서도 통찰력 있는 연출이 어우러져,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닌,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작품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무너진 구조물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진짜 재난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 ‘터널’을 지금 다시 조명해 봅니다.


영화 '터널' 리뷰, 무너진 터널, 고립된 한 사람과 무관심한 세상

영화는 평범한 가장 ‘정수’(하정우)가 퇴근길에 터널을 지나던 중 갑작스러운 붕괴 사고에 갇히며 시작됩니다. 차량 잔해와 콘크리트 더미 속, 그가 가진 것은 생수 두 병과 케이크 하나, 그리고 배터리 78%의 휴대폰뿐. 구조대가 도착하고, 뉴스가 보도되고, 가족이 오열하는 모습까지는 익숙하지만, 영화는 그다음의 ‘시간’을 조명합니다. 바로 구조가 지연되고, 관심이 식어가고, 언론이 선정적으로 사건을 소비해 버리는 냉담한 현실입니다.

처음에는 구조될 것이라 믿고 버티던 정수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육체적 고통과 심리적 붕괴에 직면합니다. 답답한 공간, 물리적 고립, 반복되는 무음 속에서 그는 생존의 본능과 포기의 유혹 사이에서 끊임없이 싸웁니다. 그러나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밖’에 있습니다. 정수가 외치는 “살려달라”는 목소리는 점점 외면당하고, 사람들은 ‘예산’, ‘효율’,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그의 존재를 잊어가기 시작합니다.

터널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과 ‘정책적 회피’를 상징하는 장치입니다. 이 안에 갇힌 개인의 삶이 점차 숫자로 환원되고, 결국 하나의 이슈로 소비되다 사라지는 과정은, 우리가 실제 재난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했는지 보여줍니다. 영화는 이 상황을 선동하거나 과장 없이, 오히려 차분하게 풀어가며 현실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고립과 연결의 드라마: 배우들의 입체적 연기

하정우는 극의 중심에서 거의 독백에 가까운 연기를 펼치며, 고립된 인물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냅니다. 혼잣말, 표정, 호흡조차 연기의 도구로 사용되며,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와 감정을 적절히 조율하는 그의 연기력은 극을 지탱하는 가장 큰 축입니다. 특히, 어둠 속에서 딸을 떠올리며 버티는 장면은 인간의 존엄과 생존 의지를 동시에 보여주는 인상적인 순간입니다.

배두나는 남편 정수의 구조를 위해 애쓰는 아내 ‘세현’ 역을 맡아,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실감 나는 현실 연기를 선보입니다. 기자들의 질문, 구조 당국과의 갈등, 그리고 혼자 맞이하는 밤의 고통까지 그녀는 ‘남겨진 자’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전달합니다. 그녀의 연기는 이 영화가 단순히 터널 안의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또한 오달수가 맡은 민간 구조대장 ‘대경’은 관료주의와 맞서 싸우는 인물로 등장해, 영화의 현실 비판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신념을 고수하며 때론 정부와 충돌하고, 때론 동료 구조대원과 갈등을 겪지만, 결국 정수의 생존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구조를 지속합니다. 오달수의 인간미 넘치는 연기는 긴장 속에서 따뜻한 울림을 전하며, 관객에게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김성훈 감독의 차가운 시선과 따뜻한 문제의식

감독 김성훈은 ‘재난은 사건이 아니라 시스템의 거울’이라는 관점을 영화 전반에 녹여냅니다. ‘터널’은 재난 블록버스터가 흔히 사용하는 시끄러운 음악과 과장된 연출 없이, 절제된 카메라와 조명, 간결한 대사로 인물의 감정에 집중합니다. 과한 눈물이 나 비장한 선언이 아닌, 오히려 일상의 언어와 표정에서 더 큰 울림을 전달하는 점이 이 영화의 강점입니다.

정수를 살리기 위한 구조 작업은 시간이 갈수록 무기력해지고, 정부는 결국 “새 터널을 뚫자”는 결론을 내립니다. 이는 단지 영화적 설정이 아니라, 실제 사회가 개인의 생명을 효율성과 경제성으로 평가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언론은 희망적이거나 자극적인 장면만 골라 보도하며, 국민의 관심은 점점 식어가고, 정수의 존재는 마치 ‘뉴스 속 주인공’에서 ‘과거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영화 속 라디오 방송, 전화기 너머의 사람들, 작은 손전등의 불빛 등은 시각적으로도 극한의 상황에서 ‘연결’이 주는 희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터널’은 생존 영화가 아닌 ‘연대와 무관심’에 대한 영화가 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를 끝까지 기억하고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론: 가장 긴 싸움은 버티는 싸움이다

‘터널’은 단지 콘크리트가 무너져 내리는 재난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징일 뿐, 영화가 진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관심이 더 위험하다’는 인간 사회에 대한 경고입니다. 극 중 인물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보여주는 미묘한 감정과 반응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닌 우리가 처한 현실의 축소판처럼 느껴집니다.

누군가는 무너진 터널에, 누군가는 무너진 관계에, 또 누군가는 고립된 마음속에 갇혀 살아갑니다. 이 영화는 그 모든 ‘터널 속 존재들’에게 말을 겁니다.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 당신을 잊지 않기를.”

2024년 오늘, ‘터널’은 단순한 장르영화를 넘어, 여전히 반복되는 재난과 무관심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다시 돌아보게 만듭니다. 그 울림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