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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과'​ 흠집 난 삶의 결투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4. 30.

영화 '파과' 포스터

 

 

원작의 깊이를 담아낸 묵직한 드라마

영화 <파과>는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민규동 감독이 연출을 맡은 작품입니다. 2025년 4월 30일 국내 개봉했으며,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섹션에 공식 초청되어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되며 작품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인정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60대 여성 킬러 ‘조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노년의 삶과 죽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성찰을 담은 드라마입니다.

조각 역은 이혜영 배우가 맡아 노련하면서도 절제된 연기로 인물의 복잡한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하였고, 조각을 쫓는 젊은 킬러 ‘투우’ 역은 김성철이 연기하며 세대 간 갈등과 복수심의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이외에도 연우진, 김무열, 신시아 등이 출연하여 극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마지막 임무를 앞둔 노년의 킬러

조각은 40년간 ‘신성방역’이라는 그림자 조직에서 일해온 전설적인 킬러입니다. 그러나 세월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녀의 몸과 마음에는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찾아옵니다. 과거에 죽였던 사람들의 얼굴이 꿈에 나타나고,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와 고통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그런 그녀 앞에 ‘투우’가 나타납니다. 투우는 과거 조각에게 아버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한 인물로, 냉정하고 치밀한 성격의 킬러입니다. 조각은 자신이 언젠가 이 젊은 킬러에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음을 예감하고, 마지막 임무를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결산을 하듯 깊은 내면의 사유에 빠지게 됩니다.


액션 그 너머의 성찰

<파과>는 단순한 액션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액션이라는 장르적 틀을 빌려, 인간 존재의 깊은 본질을 들여다보는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조각은 더 이상 완벽한 기계가 아닙니다. 그녀는 흔들리고, 괴로워하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를 자문합니다. 이혜영은 이러한 조각의 내면을 결코 과장되지 않게, 단단한 감정의 흐름으로 표현합니다.

김성철이 연기한 투우는 단순한 복수귀가 아닙니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속에서 분노와 슬픔을 반복하며, 조각이라는 존재를 이해하려 애쓰기도 합니다. 두 인물은 서로를 적으로 마주하지만, 어쩌면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동반자이기도 합니다.

이 영화는 그 대립과 추적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모든 장면마다 감정의 층위가 다르게 쌓여갑니다. 특히 조각과 투우가 서로를 마주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은 액션과 감정, 긴장과 연민이 동시에 폭발하는 강렬한 시퀀스로,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파과'영화 사진

 

느와르적 정서와 미장센

영화 <파과>는 전체적으로 느와르의 정서를 갖고 있습니다. 어두운 색감과 절제된 조명, 침묵이 강조되는 연출은 킬러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보다는, 그 이면의 허무와 고독을 더 분명히 드러냅니다. 민규동 감독 특유의 섬세한 시선은 액션마저도 감정적인 울림으로 바꾸며, 이야기의 밀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듭니다.

제목 ‘파과’는 ‘흠집이 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정확히 그 의미를 따라갑니다. 조각과 투우,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까지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상처받았고, 상처를 주었으며, 흠집 난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영화는 그 흠집을 직시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삶과 죽음을 넘어, 존재의 질문으로

<파과>는 노년의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도 결코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묵직한 시선으로 죽음에 가까워진 존재가 삶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정리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혜영과 김성철 두 배우의 강렬한 연기와 민규동 감독의 정제된 연출은, 장르적 재미와 예술적 깊이를 모두 아우릅니다.

액션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게 된 관객도, 마지막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파과>는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싸우는 이야기인 동시에,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이라는 끝자락에서 비로소 삶을 돌아보는 이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