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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운트(COUNT)’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복싱 영웅이,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되어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도 바뀌었지만, 끝내 꺾이지 않는 정의감과 사명감을 품은 인물이 다시 ‘링 위’에 서는 과정을 그린 감동 드라마다. 유쾌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는 이 영화는 스포츠의 감동과 더불어 인물의 성장을 통해 관객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1. 이상주의자 박시헌, 세상과의 싸움
주인공 박시헌(진선규)은 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온 국민의 영웅이 되었지만, 현재는 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시대는 변했고, 복싱도 잊힌 운동이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정의’와 ‘원칙’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학교 안팎에서 그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힌다. 교육보다는 입시가 중시되는 학교 분위기,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성격 탓에 동료 교사나 학부모들과도 갈등을 겪는다. ‘카운트’는 박시헌이라는 인물을 통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그려낸다. 그는 체육교사로 학생들과 맞닿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선수’이자 ‘전사’로 남아 있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는 때로는 고집스럽게 보이지만, 오히려 관객은 그 안에서 진심과 열정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는 박시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가 타협 대신 정면 돌파를 선택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 특히 그가 가진 과거의 영광과 현재의 무력함 사이의 간극은 많은 중장년층 관객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영웅의 삶이 늘 화려하지만은 않으며, 진짜 용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싸우는 사람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대목이다.
2. 성장과 변화, 제자와 함께한 두 번째 라운드
영화의 또 다른 중심축은 박시헌과 그의 제자 윤우(성유빈)와의 관계다. 복싱 유망주였지만 현실에 좌절하고 있던 윤우는 박시헌의 눈에 띄게 되고, 둘은 사제 관계를 넘어 인생의 동반자 같은 성장의 여정을 함께 걷게 된다. 윤우는 처음에는 냉소적이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박시헌의 진심과 열정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이들의 관계는 단순한 스포츠 지도와 제자의 구도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로 발전해 간다. 윤우는 박시헌에게는 잊고 있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존재이고, 박시헌은 윤우에게는 세상과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진짜 어른이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순히 체육 영화로 흐르지 않고, 청춘과 중년이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특히 ‘누군가를 위해 다시 싸우는 선택’은 박시헌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그의 선택은 단순한 이상주의가 아닌, 구체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며 관객에게 감동을 안긴다. 윤우 또한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정의하는 계기를 맞이하고, 마침내는 박시헌 못지않은 열정과 용기를 보여주는 인물로 성장한다. 두 사람의 서사는 복싱이라는 스포츠의 틀 안에서 인간관계와 성장 드라마로 풍성하게 완성된다.
3. 스포츠 영화의 감동, 유쾌한 연출로 담아내다
‘카운트’는 복싱이라는 진지한 스포츠를 다루면서도, 전반적으로 유쾌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잃지 않는다. 감독 권혁재는 과도한 감정 몰입보다는, 캐릭터 중심의 연출과 현실감 있는 상황 설정을 통해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다. 특히 박시헌 캐릭터는 무겁지 않게 묘사된다. 진선규는 이 인물을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며, 관객에게 진정성과 웃음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의 연기는 현실적인 체육교사의 모습과 이상주의자의 복합적인 감정을 잘 담아내며, 극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영화 속 복싱 장면도 현실감 있게 구성되어 있다. 선수의 기술적인 면뿐만 아니라, 관중의 함성, 링 위의 긴장, 패배의 아픔과 승리의 감격 등 복싱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며 스포츠 영화로서의 기본기를 탄탄히 갖췄다. 또한 영화에는 감동뿐만 아니라, 재치 있는 유머가 곳곳에 녹아 있어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다. 조연 캐릭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와 시선,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극에 생기를 더한다. 결국 ‘카운트’는 진지한 메시지와 가볍지 않은 감정을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낸 스포츠 드라마다. 누구나 한 번쯤 링 밖에서 인생과 싸우는 기분을 느껴봤다면, 이 영화는 그 경험을 따뜻하고 명랑하게 위로해 줄 것이다.
‘카운트’는 단순한 복싱 영화가 아니다. 과거의 영광에 기대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이 맞닥뜨린 현실, 정의, 성장의 과정을 진정성 있게 그린 드라마다. 유쾌한 전개 속에 묵직한 감정과 메시지를 녹여내며, 관객에게 웃음과 감동, 그리고 위로를 선사한다. 한때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우리에게, 다시 링 위에 설 용기를 주는 영화. 인생 2라운드를 준비하는 모두에게 ‘카운트’는 큰 응원과 박수를 보내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