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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봉한 영화 <하얼빈>은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여정을 그린 감동 실화 기반 작품입니다. 단순한 암살극이 아닌,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신념과 철학,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의 미래를 고민했던 지식인의 면모까지 담아낸 <하얼빈>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높은 몰입감과 묵직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이 글에서는 <하얼빈>의 핵심 줄거리, 등장인물의 역사적 의미, 결말의 메시지까지 차근차근 리뷰합니다.
하얼빈 줄거리
영화 <하얼빈>은 1909년, 러시아 제국령 하얼빈을 배경으로 시작됩니다. 일본 제국의 조선 침탈이 본격화되던 시기,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하얼빈 등지로 망명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합니다. 이 가운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건 한 남자, 안중근(현빈 분)이 영화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안중근은 러시아에서 결성된 독립군 조직 '동의의군'의 중추적 인물로 등장하며, 그의 사명감은 단순한 민족주의를 넘어 '동양의 평화'라는 철학적 이상으로 확장됩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하얼빈 방문 소식을 접한 그는 단독 암살을 결심하고, 동지들과 함께 목숨을 건 거사를 준비합니다. 영화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까지의 과정 — 무기 조달, 위장 이동, 신문 검열 회피, 정보 교류 등 — 을 리얼하게 보여주며 관객을 긴장감 속으로 끌어당깁니다.
하얼빈역 의거 당일, 안중근은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총탄을 발사합니다. 총알은 정확히 명중하고, 그는 곧바로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는 도주하지 않고, "나는 조선의 의병장 안중근이다"라고 외칩니다. 영화는 그의 인물됨과 철학을 따라가며 단순한 영웅 서사를 넘어서는 깊이를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은 역사적 사건을 쫓는 서사이지만, 중반부 이후부터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내면, 신념, 사상에 집중하며 서서히 휴먼 드라마로 전환됩니다. 그의 어린 시절 회상, 가족과의 이별, 수감 후 동료들과의 재회, 자필 유묵 작성 등은 그가 단순한 영웅이 아니라, 고뇌하는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부각합니다.
특히, 수감 중 러시아인, 중국인 수감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당시 국제정세 속에서 조선인의 위치, 아시아인의 운명, 제국주의의 폭력성을 날카롭게 조명하며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서는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하얼빈이 담은 역사적 의미
<하얼빈>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단순한 ‘영웅’이나 ‘순국선열’로 박제하지 않고, 철학과 이념을 가진 지식인 독립운동가로 깊이 있게 조명했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하고 있지만, 영화는 그 너머의 이야기 — 즉, 왜 그는 그 일을 했는가에 집중합니다.
안중근은 실제로 재판 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죄목을 15개 항목으로 정리한 정치 문서를 제출했습니다. 이토가 대한제국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교육과 언론의 자유를 탄압했으며, 한민족의 자결권을 말살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죠. 영화는 이 장면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며, 그가 단지 분노한 청년이 아닌, 체계적 논리를 가진 정치적 저항가였음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안중근이 말한 ‘동양평화론’이라는 이상주의를 중심에 둡니다. 이는 단지 일본을 반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중국·일본이 상호존중 속에 공존하는 미래를 꿈꾼 철학적 비전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 열강의 침략을 경계하며 아시아의 연대 필요성을 주장했고, 이는 오늘날 동북아 외교와 역사 인식 문제에까지 시사점을 줍니다.
이처럼 <하얼빈>은 안중근을 기억하는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를 단순히 ‘이토를 죽인 사람’이 아닌, ‘당시 세계를 이해하고 움직이려 했던 지식인’으로서 재조명하면서, 관객에게 역사적 감정 이상의 사고를 유도합니다.
또한 영화는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의 다양한 모습도 함께 그립니다. 누군가는 끝까지 투쟁을 선택하고, 또 누군가는 체념 속에서 희망을 품는 이질적인 인물 군상은 ‘독립운동’이라는 키워드를 다양한 색깔로 보여주며,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국을 위해 싸웠다는 진실을 말해줍니다.
하얼빈 결말
영화의 후반부는 안중근의 체포 이후 법정 투쟁, 수감생활, 유언, 마지막 순간까지 조명하며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는 재판에서 단 한 번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나는 정당한 국제법의 보호를 받는 전쟁 포로이자 의병장이다"라고 주장하며, 일본 측의 '살인자 프레임'을 강하게 반박합니다.
그는 자신을 죽이는 이들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며, 조선의 독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 예언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단순한 반일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진심 어린 신념의 언어로 표현되며 관객의 가슴을 울립니다.
특히 감정의 절정을 이끄는 장면은 ‘단지 혈서’입니다. 안중근과 동료들이 손가락을 자르고 피로 대한독립을 맹세하는 장면은 극도의 비장미와 상징성을 담고 있으며, 이는 스크린 밖의 관객에게도 전율을 안깁니다.
그의 처형 장면은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안중근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遺墨)을 클로즈업하며 담담하게 연출됩니다. “爲國獻身 軍人本分(위국헌신 군인본분)” —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침은 군인의 본분이다.’ 그의 이 글씨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영화는 완벽한 감정의 정점을 찍습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그의 생전 사진, 당시 신문기사, 유묵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실화 기반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합니다. 관객은 단지 영화를 본 것이 아니라, 한 인물의 삶을 함께 살아낸 듯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얼빈>은 단순히 안중근을 기리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현빈의 절제된 연기, 밀도 높은 연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존중이 빚어낸 이 작품은 단지 과거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재를 비추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영화입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 사상은 지금도 살아 있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단지 자막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