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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 조국과 죽음을 건 첩보 서사극

by 하고재비 라이프 2025. 4. 30.

'하얼빈' 영화 포스터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만나는 하얼빈

지난해 12월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 <하얼빈>이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관객과 만났습니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역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한 영화입니다. 현빈이 안중근 역을 맡았으며,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이동욱 등 다수의 배우들이 다양한 독립운동가로 등장하여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 재현을 넘어서, 한 인간이 신념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뇌와 결단을 중심에 둡니다. 극적인 사건 전개보다는 심리적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점에서, 기존의 영웅서사 중심 사극과 차별화를 이룹니다. 영화를 통해 관객은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표면적인 위대함이 아닌, 그 속의 인간적인 고통과 흔들림을 엿볼 수 있습니다.


결의와 희생, 그리고 차가운 여정

이야기는 함경북도 회령에서의 전투로 시작됩니다. 대한의군은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안중근은 포로가 된 일본군 장교 모리 다쓰오를 석방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이후 독립군에게 큰 위협으로 되돌아오게 되며, 안중근은 깊은 죄책감을 안게 됩니다. 이후 그는 동지 우덕순, 김상현, 최재형, 이창섭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계획하며 하얼빈으로 향합니다. 이들의 여정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공부인의 도움도 함께합니다.

이 여정은 차가운 겨울, 험난한 지형, 끊임없는 감시와 추적이라는 장애물로 가득 차 있으며, 이들의 신념과 용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영화는 그 과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절제된 방식으로 담아냅니다. 화려한 액션이나 인위적인 대사 없이도 인물들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현실감 있는 연출과 깊은 감정선

우민호 감독은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에서 정치적 긴장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바 있으며,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연출 감각을 그대로 이어갑니다. <하얼빈>은 정치적 서사를 스릴러적 감각으로 풀어내며, 한편으로는 시대극의 묵직함을 유지합니다. 현빈은 안중근 역을 맡아 화려한 외형보다는 내면의 고뇌와 결단을 담담하고 절제된 연기로 표현합니다. 그의 눈빛과 침묵은 말보다 많은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조우진, 박정민, 전여빈, 이동욱 등 조연 배우들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독립운동가의 다양한 면모를 입체적으로 그려냅니다. 이들은 이상과 현실, 감정과 이성 사이의 복합적인 갈등을 연기로 표현하며, 영화의 중심을 더욱 단단하게 다져줍니다.


차가운 배경 속 뜨거운 신념

촬영은 몽골과 라트비아에서 진행되었으며, 특히 몽골의 홉스골 호수에서 진행된 장면은 영상미와 극의 정서 모두를 살리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실제로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진행된 이 장면들은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의 결의를 더욱 뚜렷하게 강조합니다. 단순한 재현이 아닌, 감각적인 연출과 구성으로 당시의 정황을 실감 나게 구현해 냈습니다.

촬영 장비로는 아리 알렉사 65 카메라가 사용되었으며,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더해져 영화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영상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며 감정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점은 관객의 몰입도를 크게 높이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질문

<하얼빈>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만을 담은 영화는 아닙니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던 이들의 선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며, 무엇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가. 영화는 안중근의 거사를 통해 그 질문을 관객 각자에게 맡깁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공개된 <하얼빈>은 극장에서 느꼈던 웅장한 스케일 대신, 더 섬세하게 캐릭터의 감정선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긴 여운과 깊은 생각을 남기는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영화 이상의 가치를 지닌 수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