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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개봉한 <행복의 나라>는 죽음을 앞둔 인물들과 그들을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행복이란 무엇인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감성 드라마다. 실화를 모티브로 하여 사회적 약자의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시선을 담은 이 작품은, 생의 끝자락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치유의 여정을 조용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다. 화려한 연출이나 극적인 전개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이 영화는, 살아 있는 동안 진짜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금 되묻게 한다.
행복의 나라 줄거리
주인공 '정국'(박해일)은 말기 암 판정을 받은 환자로,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시간을 조용히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는 무연고자로 홀로 살아왔으며, 병원도 더는 그를 붙잡지 않는다. 정국은 병원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수연'(수현 분)의 권유로, 말기 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원 ‘행복의 나라’에 입소하게 된다.
'행복의 나라'는 이름만큼 밝고 화사하진 않지만, 죽음을 앞둔 이들이 조금 더 인간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하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환자들이 있다. 치매에 걸린 노인, 청년 암환자, 가족이 외면한 중년 여성 등. 그들은 각자의 상처와 두려움을 품고 있으나, 하루하루를 함께 하며 작지만 소중한 순간을 쌓아간다.
정국은 처음에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무기력했지만, 수연과의 교류, 동료 환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수연은 과거 자신의 가족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떠나보낸 경험이 있으며, 그 상처를 품은 채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키는 일을 선택했다. 그녀는 정국에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마무리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이처럼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작고 섬세한 일상들을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위안이 되고, 또 치유가 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정국은 어느 순간부터 병실 벽에 시를 써붙이기 시작하고, 식물 가꾸기를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그렇게 ‘행복’이란 단어가 죽음의 공간 안에서도 피어나는 아이러니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행복의 나라 해석과 상징
<행복의 나라>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그 앞에서 사람들의 자세와 관계를 통해 삶의 본질을 되묻는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죽음을 단순히 ‘끝’이 아닌 ‘삶의 일부’로 다룬다는 점이다. 특히 호스피스 병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그 안에서도 인간다운 순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행복의 나라’라는 이름은 역설적이다.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지만, 그 속에서 오히려 가장 진실된 감정과 연결이 발생한다. 이는 “행복은 완벽한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에 있다”는 메시지로 확장된다.
또한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자연 요소들 — 병동 정원의 꽃,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 환자들이 함께 가꾸는 화분 등은 모두 삶의 순환과 소생을 상징한다. 이는 죽음을 이야기하면서도 삶을 더욱 찬미하게 만드는 연출적 장치로, 감독은 이를 통해 “죽음도 삶의 일부이며, 그 또한 의미 있다”는 철학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정국이 남긴 시 한 구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끝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 다시 한번 꽃이 피었다.” 이 문장은 영화의 전체 메시지를 함축한다. 마지막이라고 느낀 순간, 누군가와의 연결이 삶을 다시 의미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행복의 나라 결말
영화의 결말은 절제된 감정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정국은 결국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고, 마지막으로 수연의 손을 잡은 채 눈을 감는다. 그 장면은 장엄하지 않지만, 오히려 조용한 평화를 느끼게 한다. 주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그 눈물은 슬픔만이 아닌 ‘잘 떠나보냈다’는 위안의 감정이 섞여 있다.
정국이 남긴 시는 병동 벽에 그대로 남고, 그의 화분은 다른 환자가 돌본다. 수연은 다시 새로운 환자를 맞이하며 영화는 순환의 의미를 담아 마무리된다. 결말은 극적인 사건 없이, 오히려 삶의 흐름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관객에게 ‘남겨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잔잔히 일러준다.
이 영화의 마지막 메시지는 누군가의 삶이 끝나도, 그 사람이 남긴 온기와 기억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삶과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이며, ‘행복의 나라’는 어쩌면 그 연결이 완성되는 곳이다.
결론: 마지막 순간에도 삶은 계속된다
<행복의 나라>는 웅장한 드라마나 화려한 대사 없이도, 삶과 죽음을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그려낸다.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안에서 피어나는 웃음과 다정함, 그리고 나눔의 순간들을 통해 관객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된다.
모든 인생에는 끝이 있다. 그러나 그 끝이 슬픔만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 진심 어린 손길 하나가 인간을 다시 살게 만든다. <행복의 나라>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 “행복은 지금, 여기에, 서로의 곁에 있다.”